기대를 모았던 한국과 미국 양국 간의 '백신 협력' 구상이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베일을 벗었다.
양국 정부가 합의한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의 핵심은 미국의 백신 기술과 한국의 생산능력을 결합해 전 세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공급을 위한 대규모 생산기지를 국내에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번 합의를 통해 아스트라제네카(AZ)·노바백스·스푸트니크 V에 이어 모더나 백신까지 총 4종의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하게 되는 것은 물론 향후 신종 감염병 대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mRNA(전령RNA, 메신저 리보핵산) 기술 확보의 길도 열게 됐다.
일부 한계도 지적되지만, 감염병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 생산의 속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동시에 국내 공급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구축에 합의했다.
이후 양국 보건장관 회담, 한미 기업이 참여한 파트너십 행사를 통해 전 세계 백신 수급 문제를 해소하고 국내에 새로운 백신 생산기반을 구축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 4건을 체결했다.
구체적으로는 글로벌 1위 바이오의약품 위탁 생산업체인 국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모더나사(社)와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분기부터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원액을 인체에 투여할 수 있는 최종 형태로 만드는 '완제(병입) 충전'에 들어간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백신 수억회분은 미국 이외의 지역으로 공급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현재 현재 바이러스 전달체(벡터) 방식의 아스트라제네카·스푸트니크V 백신과 합성항원 방식의 노바백스 백신을 생산하고 있으며, mRNA 기반 백신 생산 경험은 없다.
mRNA는 화이자·모더나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면서 사용한 플랫폼으로, 기술 난도가 높은 의료기술이다. 바이러스의 항원 유전자를 mRNA 형태로 주입해 체내에서 항원 단백질을 생성함으로써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예방 효과가 90% 이상인 데다 신속한 개발이 가능해 차세대 백신으로 대두되고 있다.
정은영 중앙사고수습본부 백신도입사무국장은 23일 브리핑에서 "장기적으로 mRNA 백신을 확보하는 데 상당히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도 모더나사와 한국 투자 및 생산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와 관련해 문동민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모더나가 한국에 투자해 백신 생산시설을 설립하려는 의지를 확인했다"면서 "모더나는 한국의 고급 인력 채용을 위해 노력하고 산업부는 신속한 공장 설립을 위해 적정 부지를 추천하는 등 투자 활동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복지부·SK바이오사이언스와 노바백스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백신, 인플루엔자(독감)와 코로나19를 동시에 무력화할 수 있는 결합백신 등 차세대 백신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은 mRNA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해 모더나와 mRNA 백신 연구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정부는 이번 백신 파트너십을 통해 '글로벌 백신 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강도태 복지부 2차관은 "양국이 글로벌 보건 위기에 공동 대응하는 동시에 한국이 백신 부족 상황을 타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면서 "글로벌 백신 허브 국가로 발전하는 데에도 새로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우수한 생산 역량과 인적 자원, 품질 관리 수준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도 있는 만큼 국내 공급도 더욱 안정적으로 이뤄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은영 국장도 "이번 백신 파트너십은 미국의 우수한 기술과 한국의 생산 능력이 합해져 장기적인 대량 생산기지를 구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 합의의 성과가 조기에 가시화하도록 실무 논의 기구인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전문가그룹'도 신속히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모더나의 국내 투자와 mRNA 기술 확보, 모더나 국내 생산시설 확보에 따른 백신의 조속한 도입,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는 코로나19 2·3가 백신 개발, 백신 원료·부자재의 원활한 도입 등이 주요 지원 과제다.
이처럼 글로벌 백신 허브 구상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방안이 나왔지만, 한계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 백신을 생산하는 '완제 충전'은 원액 생산 기술 이전이 동반되지 않은 위탁생산으로, mRNA 생산 역량 구축에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모더나 백신을 위탁생산하는 스위스 론자의 경우 원액을 생산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정은 원액을 들여와 바이알(유리병) 무균충전, 라벨링, 포장에 국한된다.
또 방미 기간 SK바이오사이언스와 노바백스 간의 기술이전 계약 연장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앞서 지난 4월 노바백스 최고경영자를 만나 SK바이오사이언스가 노바백스 백신 원액을 생산할 수 있는 기간을 올해 말에서 내년 이후로 연장하기로 했으나, 이후 합의가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백신 스와프'가 성사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