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다른 사람을 위한다기보다 자기계발에 더 큰 도움이 됩니다"
제천시종합자원봉사센터의 이기란(66) 손짓사랑통역단 회장이 주변에 봉사를 권할 때 빼놓지 않는 말이다.
15년간 봉사활동을 이어오면서 몸소 체험한 진리이자, 그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기록된 그의 봉사시간은 무려 3천968시간에 이른다.
그가 자원봉사와 연을 맺은 건 2006년 10월이다.
시멘트회사 직원이던 그는 당시 3조 3교대로 1년 365일을 꼬박 근무하다시피 하다가, 2005년 11월 주 40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매주 이틀씩 쉬는 날이 생겼다.
소중한 휴일을 어떻게 하면 더 뜻깊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봉사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복지관에서 노인들의 배식과 목욕을 돕는 일을 했다.
그러던 중 2009년 우연히 수어를 배울 기회가 생겼다.
늦깎이 대학생이 돼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겨울방학 때 자원봉사센터로 실습을 나갔는데, 그곳에서 수어를 연습하는 동아리 회원들을 만난 게 계기다.
이 회장은 "호기심에 수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동아리 회원들이 흔쾌히 허락해줬다"며 "이때부터 시간, 장소 구애 없이 수어를 공부하고 반복 연습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밤낮없는 연습에도 수어를 익히기는 쉽지 않았다. 연습이라는 게 뒤돌아서면 까먹기 일쑤다 보니 좀처럼 학습 효과가 오르지 않았다.
기왕에 시작한 수어를 실전에서 제대로 익히고 활용하기로 결심한 그는 뜻을 같이하는 회원 10여명과 봉사단체 손짓사랑통역단을 결성했다.
그리고 수어 통역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농아인과 함께 장을 보고, 체험활동을 가거나 여행도 다녀왔다.
2017년 농아인센터와 연계해 다녀온 베트남 여행은 이 회장이 수어 봉사에 더욱 공을 들이는 계기가 됐다.
농아인 3∼4명과 봉사자 1명이 짝을 지어 여행하는 일정이었는데, 하루는 혼자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방 안에 열쇠를 두고 나와 숙소에 들어갈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숙소 안에는 같은 팀의 농아인들이 휴식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의사 전달이 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잠시 불편을 느끼는 순간, 이런 불편을 평생 감내하면서 살아가는 농아인들을 생각하니 울컥해지더라"며 "그때부터 내 힘이 닿는 데까지 이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2년 전 퇴직한 이후 봉사에 더욱 매진한 그는 수어 봉사 덕에 충북장애인체육대회 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19년 제천에서 열린 대회에서 농아인들과 팀을 이뤄 한궁 종목에 출전, 동메달을 땄다.
한궁은 전통놀이인 투호와 국궁, 서양의 양궁과 다트를 접목해 만든 생활체육 종목이다.
최근에는 생산적 일손봉사를 통해 농아인 부부의 농사일을 돕고 있다.
농아인 부부가 주변 도움 없이 뙤약볕 아래서 힘들게 담배·고추 농사를 짓고 있다는 사연을 듣고는 한달음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부부에게 자원봉사센터의 생산적 일손봉사를 신청하게 한 뒤 손짓사랑통역단 회원들과 직접 현장 봉사를 시작했다.
작년에는 담배 수확을 도왔고, 올해는 식재·복토 등 일손이 필요할 때마다 틈나는 대로 나가 보고 있다.
그는 "많은 농아인이 정보가 부족해 좋은 복지서비스가 있어도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며 "주변에서 관심 갖고 이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자원봉사센터 안에 결정된 자원봉사대학 총동문회장을 맡아 활동의 폭을 더 넓혀나갈 예정이다.
그는 "지역 내 자원봉사가 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지도록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며 "내 인생에 새로운 활력을 선물한 농아인들을 위한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봉사는 남을 위한다기보다는 하다 보면 나 자신이 좋아지는 느낌, 성취감 등을 느끼게 든다"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봉사를 주위 사람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