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이 오는 8월31일부터 내년 6월30일까지 이어지는 '2022-2023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에 신작 26편, 레퍼토리 10편, 상설 공연 14편, 공동 주최 11편 등 61편의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무장애(배리어 프리) 공연부터 로봇이 지휘하는 관현악까지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국립극장은 12일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22-2023 시즌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전통 기반의 동시대적 공연 예술 창작을 이어가는 한편 '다양성'과 '공존'을 전제로 모두를 위한 극장으로 나아가는 데 방점을 찍었다.강성구 국립극장 운영지원부장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협력과 상생을 통해 국립극장이 '모두를 위한 극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국립창극단 허종열 예술감독 대행은 "올해는 창극단 60주년을 맞는 해로,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 새로운 작품을 최대한 많이 선보일 예정"이라며 "이번 시즌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우리 소리로 정성스럽게 준비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국립무용단 손인영 예술단장은 "국립무용단도 올해가 60주년으로, 풍성한 작품들을 준비했다"며 "창작의 정수에 집중하는 작품부터 동시대 관객들과 호흡하는 현대적인 작품, 한 명이 출연하는 작품부터 50명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작품까지 흥겹고 다양한 작품들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김성진 예술감독은 "오랜 고민을 담아 레퍼토리를 만들고,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한계를 두지 않는 공연에 관객들의 애정어린 시선을 바란다"고 했다. ◆예술과 기술, 장애인·여성 등 다양한 목소리 담아국립극장은 이번 시즌 목표를 '함께 그리는 내일의 출발점'으로 삼고, 예술과 기술, 장애인·여성 등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다. 특히 장애인 문화 향유를 확대하고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데 앞장서고자 무장애(배리어 프리) 공연을 제작한다.국립극장은 음악극·연극·오케스트라 등 무장애 공연의 장르를 다양화하고 장애예술인이 주·조역으로 나서는 작품을 개발할 예정이다. 장애의 유무를 떠나 작품을 새롭게 감각하는 방법으로써 음성 해설과 수어 통역을 제공한다.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음악극 '합★체'(9월15~18일)는 작은 키가 고민인 쌍둥이 형제의 유쾌한 성장담을 그린다. 저신장 배우 김범진이 쌍둥이의 아버지 역을 맡아 무대 위 편견을 허문다. 김지원 연출은 "다양한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무장애 공연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쌍둥이 형제 오합과 오체의 재기발랄한 성장담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연극 '틴에이지 딕'(11월17~20일)은 셰익스피어 비극 '리처드 3세'를 뇌성마비 고등학생의 이야기로 각색한 마이크 루의 동명 희곡을 한국 초연하는 작품이다. 소외된 인물을 다루는 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극복과 치유의 서사, 전형적인 인물 등의 틀을 깨고 장애인을 입체적 인간으로서 생생하게 그려낸다.장애인·소외계층 학생으로 구성된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는 '2023 함께, 봄'(내년 4월15일)으로 다시 한 번 관객과 만난다.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줄 예정이다. '한국 신체극의 대가'로 불리는 연출가 임도완이 각색과 연출을 맡은 연극 '우리 읍내'(내년 6월22~25일)에서는 극작가 손턴 와일더의 동명 희곡을 '장애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낸다.국립창극단은 신작 '정년이'(내년 3월17~26일)를 통해 1950년대 인기를 끌었던 '여성 국극'을 소재로 삼은 동명의 인기 웹툰을 창극으로 선보이며,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관현악시리즈Ⅳ '부재(不在)'(내년 6월30일)에서 로봇이 지휘자로 나서는 파격적 실험에 나선다.◆국내 최초 로봇 지휘자…내년 6월 관현악시리즈Ⅳ '부재(不在)'로봇 지휘자의 공연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협업한 '부재'는 그 자체로 생각할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동욱 수석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공연에는 연구원이 개발한 안드로이드 로봇 '에버6(EveR-6)'가 투입된다. 사람과 꼭 닮은 로봇이다. 연구원은 얼굴 표현을 풍부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감정을 인식, 사람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로봇 지휘자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김성진 지휘자의 움직임을 본따 움직인다. 이동욱 연구원은 "실제 지휘자의 모션을 캡처해 로봇 동작으로 변환할 예정"이라며 "단순히 흉내내는 것을 넘어 정교한 지휘를 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 모션 데이터를 통해 다양한 곡을 지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성진 예술감독은 "한국생산기술원 이동욱 박사와 함께 협력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며 "기계나 장치로 대체할 수 없는 상위 10위 직업 중 지휘자가 포함됐는데 로봇이 과연 지휘자를 대체할 수 있을 지, 오히려 지휘자의 존재를 열망하게 되는 계기가 될 지 질문을 던지는 공연"이라고 했다.
◆'회오리'·'트로이의 연인들', 세계 무대로
코로나19로 얼어붙었던 전속 단체의 해외 공연도 재개된다.
국립무용단은 핀란드 헬싱키 댄스 하우스에서 '회오리'(9월22~24일)를 공연한다. 국립창극단은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11월18~19일)로 미국 뉴욕 브루클린음악원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 해외 창작진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두 작품은 우리 전통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며 국내외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세계 공연계의 최신 화제작들도 국내에 소개된다.
'엔톡 라이브 플러스'는 오는 9월과 내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해오름극장에서 상영된다. 9월에는 셰익스피어·몰리에르·입센의 희곡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세 편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
영국 엔티 라이브 '헨리 5세'(9월9일·15일·17일)는 올해 초연한 최신작이다. 헨리 5세가 영국군을 이끌고 전투를 치르는 백년전쟁을 재해석해 현시대 리더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프랑스 파테 라이브의 '타르튀프'(9월10일, 16~17일)는 코메디 프랑세즈가 제작하고 이보 반 호프가 연출한 작품이다. 1664년 초연 후 루이 14세의 검열로 역사상 단 한 번만 공연됐던 오리지널 버전을 만날 기회다. 네덜란드 이타 라이브 '입센의 집'(9월11일~18일)은 인터내셔널 시어터 암스테르담과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만든 작품으로, 입센의 여러 희곡을 엮어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가족의 대서사로 탄생시켰다.
'무대 위의 시인'으로 불리는 그리스 출신 연출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잉크(INK)'(내년 5월12~14일)도 한국 관객과 만난다. 이번에 내한하는 '잉크'는 2020년 초연한 작품으로, 우주의 기원인 물을 무대 미학의 핵심 소재로 활용한다.
◆젊은 창작자 양성…'가치 만드는 국립극장' 첫 결실
전통 기반의 공연예술 창작 활성화에 관한 고민도 엿볼 수 있다.
국립창극단은 판소리가 중심이 되는 창극에서 '작창'의 중요성에 주목해 '작창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작창(作唱)은 한국음악의 장단과 음계를 기반으로 극의 흐름에 맞게 새로운 소리를 짜는 작업이다. 지난 2월 선발한 4명의 신진 작창가 박정수·서의철·유태평양·장서윤이 '작창가 프로젝트 쇼케이스'(12월10~11일)에서 창작 활동의 결과물을 공개한다.
국립무용단은 내부의 안무가를 육성하고자 시작한 '넥스트 스텝'의 참여 대상을 외부까지 확장해 '안무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오는 9월 참가자 모집을 시작하며, 선발된 안무가는 '넥스트스텝Ⅲ-안무가 프로젝트'(내년 4월20~22일)에서 작품을 선보인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한국 전통음악 특유의 호흡이 담긴 장단과 선율 등 국악 고유의 어법과 색채를 표현하는 지휘자를 발굴하기 위해 '지휘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선발된 유숭산·이재훈·정예지가 2022년 하반기 '정오의 음악회'(10월13일·11월3일·12월1일) 지휘자로 나선다.
◆국립극장 3개 전속단체, 다양한 예술단체와 협업
국립창극단은 동시대 공연예술 장르로서 창극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작 '정년이'는 1950년대 여성 국극(창극) 배우들의 성장기를 그린 동명의 웹툰을 창극화한 작품이다. 창작 판소리극 '사천가'와 '억척가'를 완성한 남인우와 이자람이 각각 작품의 연출과 작창을 맡았다.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내년 6월 8~11일)에서는 연출가 이성열, 극작가 김은성, 작창가 한승석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우리 언어와 소리로 풀어낸다.
판소리와 창극의 장점을 두루 살려 젊은 소리꾼의 참신한 소리판으로 호평받은 '절창 시리즈'는 '절창Ⅲ'(내년 5월6~7일)로 찾아온다. 탁월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주목받는 국립창극단 이광복과 밴드 이날치의 보컬 안이호가 꾸민다.
국립무용단은 창단 60주년을 맞아 신작 '2022 무용극 호동'(10월27~29일)을 선보인다. 한국 무용극의 태동과 발전을 이끈 국립무용단이 오늘날 무용극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무대다. 국립무용단원 정소연·송지영·송설이 공동 안무를, 연출가 이지나가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이지나 연출은 "호동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재의 도덕적 올바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호동이 비극적 죽음을 맞았는데 그 선택이 현 시점에서 봤을 때 옳았는지, 호동은 정말 그 선택을 원했는지 등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었다"고 했다.
평생 전통춤을 수련한 무용수가 자신만의 춤사위로 재해석한 전통을 보여주는 '홀춤'은 '홀춤Ⅲ-홀춤과 겹춤'(12월2~3일)으로 찾아온다. 각자의 개성이 담긴 새로운 전통춤을 '독무'와 '2인무'로 펼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두 번째 '이음 음악제'(9월22~30일)를 통해 한국 창작음악의 오늘과 내일을 잇는 장을 마련한다. 관현악시리즈Ⅰ '비비드(Vivid): 음악의 채도'를 시작으로 50여 명의 청년 연주자가 꾸미는 '2022 오케스트라 이음', 다양한 시각의 국악관현악을 보여주는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과 '2022 3분 관현악'까지 9일간 4편의 공연이 이어진다.
다양한 예술단체와의 협력도 이어간다. 이번 시즌에는 6개 국립 예술단체와 2개 민간 예술단체가 함께 한다. 국립오페라단·국립합창단·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국립국악관현악단의 신년 음악회가 연이어 펼쳐지는 '신년음악축제'(내년1월 6~14일)도 준비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