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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실 그릇, 쓸 그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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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참 많이도 내린다.
한적한 태안의 시골마을 교회,
예배실에 틀어 놓은 찬양이
잘 들리지 않을만큼...
마치 거대한 폭포수 아래
앉은듯 예배실 지붕에 쏟아지는
빗소리가 엄청나다.
'목사님 비가 30mm이상
오지 않도록 기도해 주세요'
웃으며 '예'라고 답을 했지만
이미 그 두배가 넘었으니
내가 할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농부들이야 얼마나 간절할까?
'하나님 농부들의 마음 전합니다.'
그릇 그릇 내어다가 여기저기
비가 새는 곳 아래 가져다 놓는다.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도 다르다.
땡, 탱, 투둑, 똑똑, 줄줄줄...
본래 쓰여질 용도가 있었을 텐데
지금은 모두 빗물받이로 쓰여진다.
커다란 대형화분도 꽃대신 비를 담고
작은것은 금새 넘치고 깊은 것은
튀지 않고 얕은 것은 사방에 물이 튀고
각자 생긴 모양대로 낙수를 받아낸다.
쓰임을 받는다. 어느것 하나 불만이 없다.
내가 쓸 것, 그리고 쓰시려는 것,
나는 나야로 쓰겠다 하면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쓰시겠다는 것,
그분이 주인이기에 어떤 용도로
쓰신다 해도 생김대로 쓰이면 된다.
그럼 가장 어울리고 맞는 곳에
쓰이리라...
득음, 득도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폭포수 아래 앉아 있더니
나도 폭포수 같은 장맛비 아래에서
작은 깨달음이 있었나 보다.
다시 파주로 가는 빗속의 밤,
서해 고속도로는 끝을 알수 없게
막혀 늘어선 차들의 불빛만 보인다.
그래도 분명 끝도있고, 나는 도착한다.
또 어떤 용도로 쓰시려 이 작은 그릇을
옮기시는지?
나는 오늘도 내가 쓸것이 아닌
쓰시겠다는 곳으로
쓰임 받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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