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아시안게임에도 신체 능력이 아닌 멘털로 경쟁하는 종목이 있다. 마인드 스포츠인 체스다.
체스는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고,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 지위를 유지했다.
한국에도 장애인 체스 선수가 있다. 한국 최초의 장애인 체스 국가대표 김민호(23·대한체스연맹)다.
한국은 2018 인도네시아 대회 때 체스 선수를 파견하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엔 김민호가 당당히 출전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등학교 때부터 체스에 푹 빠진 김민호는 그동안 비장애인 단체에서 선수로 활약했고 최근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요청을 받아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민호가 항저우를 밟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김민호에게 장애인 아시안게임 출전은 큰 도전이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근육이 점점 퇴화하고 있어서 체력과 면역력이 약하다.
그래서 고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국제대회 출전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김민호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용기를 낸 김민호는 어머니 방영순(55)씨의 도움을 받아 항저우행 항공편에 몸을 실었다.
방영순 씨는 김민호의 생활 보조역할을 맡아 이번 대회에 함께 출전했다.
방 씨는 "항저우 대회 출전은 우리에게 위험한 숙제이기도 했다"라며 "처음에는 말리고 싶었는데 민호가 '하고 싶다'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김민호는 23일 중국 항저우 치위안 체스홀 9층 대국장에서 열린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체스 남자 스탠더드 PI(지체 장애) 경기를 통해 국제무대 데뷔를 했다. 그는 2경기를 치러 1승 1패를 기록했다.
첫판에선 승리했지만, 두 번째 판에선 2018 인도네시아 대회 은메달리스트인 퍼다우스 막숨(인도네시아)에게 패했다.
김민호는 24일 같은 장소에서 이틀째 경기를 치렀다. 이날도 오전에 한 경기, 오후에 한 경기를 치러 다시 1승 1패를 올렸다.
이틀 동안 2승 2패를 거둔 김민호는 승점 2를 얻었다.
하루 두 판을 치르는 일정은 김민호에게 벅차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그는 스탠더드 3경기를 더 치르고 곧바로 라피드(총 7회전)에도 출전해야 한다.
스탠더드는 제한 시간 1시간에 한 수씩 둘 때마다 추가시간 15초를 얻는 긴 호흡의 경기이고, 리피드는 20분에 증초 10초짜리 속기전이다. 오는 28일까지 하루 2∼4판씩 소화해야 한다.
승리도 패배도 간단치 않은 살얼음판 대국이 이어지고 있지만 김민호의 얼굴은 밝다.
24일 만난 김민호는 "처음 만나는 선수들과 경기를 하다 보니 전혀 예측이 안 되는데 그걸 풀어가는 재미가 있다"라고 했다.
3회전 경기를 55분 만에 승리한 김민호는 "상대 기보를 보면서 준비한 맞춤 전략이 먹혔다"라며 "상대 위치를 사이드로 몰아서 이겼다"고 설명했다.
김민호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김민호는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계속 도전을 이어갈 참이다.
김민호는 "이번 대회를 시작으로 여건만 된다면 계속 국제 대회를 나가고 싶다"고 방영순 씨에게 말했고, 방씨는 "그래, 해보자"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