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들의 상처 안 주는 코미디.
세계적인 넌버벌 퍼포먼스(비언어극) '옹알스' 팀은 관객 중 한 명이라도 미간을 찌푸리면 '그건 코미디가 아니다'라고 자책한다. 언어, 인종, 국적의 장벽을 넘기 위해 서커스 같은 저글링을 포함 각종 몸으로 단련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래서 몸에 상처가 가득하다. 잘 나가다 코로나19로 공연을 중단하면서 삶과 마음에도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혹여나 관객 누군가가 물리적·심적으로 불편해하지 않을까 매 장면 고심한다. 심지어 멤버 조수원은 본인이 암투병을 하는 가운데도 무대에 올라 누군가에게 치유가 됐다.
옹알스가 먼 길을 돌고 돌아 대학로에서 새로운 출발을 모색 중이다. 옹알스는 풍선, 물총 등 다양한 놀거리가 가득한 토이 박스에서 나오는 물품으로 상황극을 펼친다. 저글링, 마술에 비트박스까지 더해지면서 정확한 대사만 없는 총체극 형식을 띤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 받은 K-코미디다. 지난 2007년부터 코로나19 대유행 직전까지 12년간 23개국을 돌았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멜버른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 등 굵직한 축제에 아시아 처음으로 초청받았다. 2015년엔 대한민국대중문화예술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표창)을 안았다. 이들의 활약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옹알스'(2019)를 배우 차인표가 제작하기도 했다.
채경선, 조준우, 조수원이 팀을 만들었고 이후 최기섭, 하박, 이경섭, 최진영이 합류해 7인조가 됐다. 약 3년 만인 지난 3월부터 대학로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장을 옮겨 지난 9월 말부터 대학로 세우아트센터 2관(오는 12월31일까지 공연 예정) 무대에 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코미디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들은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기 보다는 지금의 삶을 개척하는 데 더 관심이 크다. 매회 공연이 끝나면 영상과 자막으로 이들이 그간 거둔 성과와 이력이 정리된다. 이들과 절친한 관계자는 "영상을 보면서 눈물이 펑펑 났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대단한데 우리는 아직도 그들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근 공연 직후 대학로에서 만난 조수원·조준우·하박·최기섭과 나눈 일문일답.
-주말 오후 1시대 공연은 대학로에서 드뭅니다.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공연 시간대가 왔다 갔다 했어요. 어린이도 볼 수 있는 '어른 공연'이었으면 좋겠는데 가족들이 많이 찾아와서 그런지 예매율이 오후 1시, 오후 4시가 괜찮더라고요. 표가 더 팔리면 오후 7시 공연을 추가할 수도 있고요."(조수원)
-여러분이 즉석에서 지목한 관객 중 한 명이 공연에 적극 참여하는 형태입니다. 그 한 명은 어떻게 뽑히는 건가요?
"보통 하박 씨나 채경선 씨가 '괜찮다 싶은 분'을 뽑아요. 그것도 기술입니다. 수원 씨가 처음 바람 잡을 때 객석을 다 스캔해요. 손을 번쩍 든 적극적인 분은 일단 패스. 약간 쑥스러워하시는 분이 좋아요. (말랑말랑해서 안전한) 공을 객석에 던질 때 그 분의 리액션을 보는 거죠. 공연 중에도 티 나지 않도록 어떤 관객분이 좋을 지 저희끼리 계속 의견을 교환해요. 관객분이 저희 설명을 못 알아들을 때 취한 리액션도 다 짜놓은 거예요. 저희 설명을 빨리 습득하시면요? 더 어렵게 설명하죠. 하하."(조준우·조수원)
-외국 공연에선 한국 관객 이벤트도 있다고요.
"외국에선 한국말을 해도 관객분들이 다 옹알이로 알아들으시니까요. 외국 공연에서 한국분들이 예매하시면 그 분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어요. 공연 끝나고 저희가 나갈 때 'OOO 어딨냐'고 외치죠. 그 한국분만 크게 웃으면서 좋아하시기도 해요."(조준우)
-현재 대학로 공연 분위기는 많이 다르죠.
"가족 관객들이 많아요. 한국어학당 다니시는 외국 분들도 단체 관람을 오고요. 다문화 가정에서도 많이 오시는 것 같고요. 최근엔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공연을 했어요."(조준우)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공연 분위기는 많이 다른가요?(옹알스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대사보다 몸짓, 표정 등의 비언어커뮤니케이션으로 공연을 채운다)
"단체 관람인데 여기서(대학로)에서 공연하면 두 번 나눠서 해야 되니까 저희가 큰 공연장을 대관해서 공연 했어요.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마임을 진짜 크게 했죠. '웃음에 있어 공평했으면 좋겠다'는 문구가 엔딩 자막으로 영상에 떴을 때 정말 박수가 많이 나왔어요. 뜨거운 리뷰가 많이 나왔고 장문의 글을 쓰신 분도 있고요."(조준우)(소셜 미디어 아이디 '_love_XXXXXX'는 '옹알스 팀은 '만국 공통어는 웃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니 웃음엔 경계가 없다. 웃음을 위해 비트박스, 마술, 저글링 등 모든 환경을 혼융하고 관객과 다양한 대화방식을 제시한다는 그들의 모습은 하루 살아내기에 지친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고 썼다.)
"저희의 웃음 타깃은 지구인이에요. 조금 몸이 불편한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연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하죠."(조수원)
-전용 극장을 만드시는 게 목표인가요?
"목표예요. 우선 대학로는 입소문 타기가 좀 편해요. 휠체어 타신 분들도 많이 오시는데 4층이기는 하지만, 턱이 없어서 올라오시면 다니시기 편하시죠. 예전에 지하에서 공연한 적이 있는데, 공간도 넓지 않고 쾌적하지도 않았거든요. 이곳은 환기 시설도 굉장히 좋아요."(조준우)
-전용 극장 프로젝트는 마스터플랜이 짜여져 있는 건가요?
"아직 멀었어요. 코로나19만 없었으면 지금쯤 완성돼 있어야 하는 거였는데요. 코로나 때 많지는 않았지만 회사가 갖고 있던 돈을 다 써야 했어요. 이제 다시 시작하는 단계라, 전용극장 건은 뒤로 미뤄놓고 있어요. 지금 극장으로 옮긴 지는 별로 안 됐어요. 일단은 12월까지 공연하기로 돼 있는데 지금 계획은 내년까지 하는 거예요. 이번 무대도 수원이가 싹 다 만든 거예요. 바로 또 옮겨갈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설치와 해체가 가능한 형태로 만들었죠. 전용관이 되면 무대를 더 화려하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요."(조준우)
-관객과 접촉이 많은 극이다 보니 코로나 때 타격이 더 컸을 거 같습니다.
"코로나19가 퍼지자마자 저희는 바로 문을 닫았어요. 그 때 중국 관객 분들이 많이 왔었을 때거든요. 저희도 저희 공연 표를 못 구할 정도로 잘 되고 있었죠. 저희가 정준하 형이랑 친한데 준하 형이 만석 됐을 때 너무 고생한다며 '만원사례'로 관객들에게 1만원씩 준 거예요. 그 다음 날 또 만석이 되고, 그렇게 계속 되니까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할 정도로 잘 됐어요. 하하."(조수원)
-현재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인가요?
"현재 멤버가 7명이거든요. 장기전으로 돌입하려면, 한 명 더 영입해서 랜덤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해요. 한 팀은 국내에서 공연하고, 다른 한 팀은 외국에서 공연할 수 있죠. 현재 해외 분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예전보다 덜해요. 에딘버러 페스티벌도 그렇고 호주의 코미디 페스티벌도 그렇고 다 축소됐어요. 올해는 조금 더 크게 하긴 했는데, 본 궤도에 완전히 올라오지는 않았죠. 빨리 해외 비즈니스가 열려야 되는 상황이에요. 해외에서 공연을 해야 다른 나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거든요. 무엇보다 해외 시장에 코미디가 나간 사례가 없다 보니까 정보를 얻기도, 관련 일을 도와줄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죠. 그런데 호주 페스티벌에서 일을 하다가 코로나를 거치면서 그만둔 친구가 있는데, 저희가 잡았어요. 그쪽 업계를 잘 아는 친구이거든요."(조준우)
-몸을 많이 쓰는 만큼 점차 나이가 들면서 지칠 법도 한데요.
"예전에 젊을 때는 공연한 이후에도 막 돌아다녔는데 이제 공연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요. 집에서 쉬면서 충전하는 시간이 많아졌죠."(조준우)
-저글링은 감각을 유지하시려면 지금도 계속 연습을 하셔야 할 거 같아요.
"오늘도 몸을 풀었는데 (몇 번 실수를 해서) 너무 많이 풀었나봐요. 하하."(조준우)
-계속 연습을 하면서 무대 감각을 익히는 게 아이돌 트레이닝 시스템 같기도 합니다.
"요즘 스탠딩 코미디가 유행하고 있는데 그분들이 발라드 가수라면 저희는 댄스 가수예요. 저도 스탠딩 코미디를 너무 좋아하고 또 그런 류의 코미디도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옹알스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저희에겐 '상처 없는 코미디'가 중요해요. 만약 그날 공연을 본 관객 100명 중 한 명이라도 미간을 찌푸리시면 '코미디는 아니다'라는 생각이에요. 물론 '블랙 코미디'를 존중하지만, 사람마다 불편한 지점이 다르잖아요. 예전에는 100명 중에 한명이 불편해도 99명이 괜찮으면 이를 무시했죠. 하지만 이제 100명 중 두 명이 불편하면 그 사람이 왜 불편한지 궁금해하고 그 이유를 찾아야 하는 시대예요. 그 두 명과 어떻게 하면 같이 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대가 된 거죠."(조수원)
-근데 아무래도 웃음의 코드가 나라, 지역마다 다르니까 난처한 일도 있을 법합니다.
"영국에서 공연할 때는 칼보다 채찍을 사용하는 게 더 위험하대요. 너무 폭력적이라서 그런가 싶었는데 '야해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어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죠. 그래서 해외 공연 갈 때마다 계속 공부를 하고 그 선을 지키려고 헸어요. 그 선을 넘어가면 다 무너지거든요."(조수원)
-옹알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관객분들도 있습니다. 개그 프로그램 코너를 그냥 무대 위에서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 같은.
"뉴질랜드 때 저희가 제일 큰 베뉴(공연장)를 받았거든요. 800석짜리. 거기를 꽉 채워서 공연을 하는데 지나가시는 한국 분이 '개콘이잖아'라고 하시더라고요."(최기섭)
"저희는 그 편견을 깨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저희 방향 그대로 가되 지치지 않으려고 해요. 어릴 때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있었어요. 그런데 그냥 꾸준히 하는 게 우리를 알리는 길이고, 그 방향성이 다른 걸 인정하게 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조준우)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김동하 씨를 최근 만났는데 그분도 잘 안 터지다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자기 쇼트 영상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빵 터졌대요."(하박)
"준우 형이 항상 공연에 대해서 맛으로 평가해요. 저희는 그냥 시장에서 파는 짜장면이라고 생각을 해요. 근데 저희가 국립극장에도 가고, 예술의전당도 갔었는데 그렇게 큰 극장에서 공연하면 2000원짜리 짜장면이 1만5000 원짜리 트러플 짜장면이 되더라고요."(최기섭)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저희는 다 10원짜리밖에 안 되거든요. 근데 990원에서 10원이 없으면 1000원이 안 되잖아요. 남들이 꼭 필요로 하는 10원이 될지는 저희 몫인 거죠."(하박)
-옹알스 코미디는 아름답기만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거기엔 노력과 아픔이 있고, 정치적으로 바르고자 하는 노력이 있고, 퍼포먼스를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훈련이 있다는 걸 직접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되게 아팠잖아요. 아프고 난 뒤에 생각도 많이 내려놓고 보는 관점도 달라졌어요. 저희가 언젠가 터져서 성공하면 당연히 좋죠. 그런데 안 터진다고 한들 저희 자체는 너무나 행복하고 아름다워요. 멤버 한 명 한 명이 그날 느끼는 그 만족감이 대단하죠. 저희가 할아버지가 돼서도 분장을 한 채 공연을 하고 있을 때, 분명 젊었을 때 저희 공연을 보신 분이 있으면 같이 무대에서 울 것 같아요. 그거 하나만 가지고도 코미디를 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해요."(조수원)
"물론 가정이 있는 친구들은 힘들겠지만, 아무도 저희 팀을 그만 두지 않잖아요. 너무 맛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좀 빠른 길이 있을 수 있어요. 근데 그러면 방향이 많이 틀어질 수도 있잖아요. 멤버들이 코로나 기간을 버티면서 방향을 잃지 않는 감각을 알게 됐어요. 감히 앞으로도 이탈자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비게이션이 똑바로 켜져 있기 때문에 도착 시간이 나와 있지 않더라도 저희가 원하는 곳에 끝내 도착할 거다라는 생각으로 가고 있습니다."(조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