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장애인이면 대학 진학이나 노동당원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집안에서만 생활합니다."
장애를 지니며 살아온 탈북 여성이 유엔 인권이사회가 열리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북한 장애인의 현실을 국제기구와 외교 관계자들 앞에서 처음으로 증언했다.
지체장애인인 이미영 씨는 18일(현지시간) 유엔 제네바 사무소 바로 옆 건물에서 사단법인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주최로 열린 북한 인권 행사에서 북한 내 장애인이 겪는 열악한 처우를 국제사회에 알렸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 인권 부대행사와 병행해 열린 이날 행사에는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 인권 특사, 이신화 북한 인권 국제협력 대사 등이 참석했다.
1970년대 초 북한 혜산에서 태어난 이씨는 생후 9개월 만에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를 못 쓰게 됐다고 한다.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남편·딸과 함께 압록강을 건넌 뒤 중국·베트남·라오스·태국을 거쳐 2018년 7월 한국으로 들어왔다.
스스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소개한 이씨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서 휠체어를 본 적이 없었다. 왕복 1시간 걸리는 길을 어머니에 업힌 채 초등학교에 다녔다"고 떠올렸다.
그는 "학급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북한에선 장애인이 대학에 갈 수 없다고 해 고등중학교만 졸업하고 진학을 못 했다"면서 "저와 같은 중증장애인은 일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졸업 후 집에 갇혀 지낸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서 장애에 대한 시각은 가혹하고 비인간적"이라며 "대부분 장애인을 '불구'라고 부르고 더 모욕적인 말로 비하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또 "나라가 휠체어를 주는 건 군 복무 중 다쳐 1·2급 장애를 가진 경우로만 알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장애를 가지면 사회참여가 거의 불가능하고 손가락질을 당하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저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 장애인을 본 적이 없고 장애인의 존재를 숨기는 사회 풍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 번도 국가에서 장애인 혜택을 받은 적이 없고 맹인·농아학교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상류층 자제만 다닐 수 있다"며 "방송에 시각장애인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나와서 우수하면 저렇게 할 수 있나보다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씨는 진학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 체념하고 독학으로 미싱을 배워 재봉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다 지금의 남편과 만나 결혼도 했다.
그러던 중 집에 도둑이 들었고, 남편과 함께 돈을 되찾으려 다투는 과정에서 폭행까지 당해 어깨뼈가 부러졌다고 이씨는 말했다. 금전 피해를 복구할 길이 없고 어깨까지 탈이 나자 차라리 북한을 떠나기로 했다고 한다.
이씨는 "한국에서 장애인을 위한 공공단체에 취업하고 건강한 사람들과 동등한 생활을 하며 새 삶을 즐기고 있다"면서 "북한의 장애인은 그 아무도 모르게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다는 현실을 국제사회가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탈북 후 중국에서 체포돼 강제 북송됐다가 구금시설에서 각종 고문을 비롯해 온갖 고초를 겪고 다시 북한을 빠져나온 지명희 씨도 증언했다
행사를 준비한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활동을 해온 비영리 단체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최초로 특별협의 기구 지위를 받은 북한 인권 전문 비정부기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