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한반도 역사상 민중이 가장 고통받았던 왕정 시기로 기록된다. 오죽하면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한다는 '초근목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평민과 노비는 왕족과 사대부의 수탈, 상공업을 천시하는 사농공상 신분제의 모순 속에서 굶주리고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
다만 '애민'의 국정 철학을 내세웠던 세종은 그나마 양민의 삶에 시선을 돌리려 노력했던 조선 왕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당대에 실제로 평민과 노비들의 경제 여건이 나아지고 인권이 개선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일단 문헌 기록상으로 세종은 현재 아프리카 저개발국처럼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던 백성들의 고통을 해결하려 노력한 흔적이 전해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종실록'에 나온다. 기근 속에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죽어가던 백성들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은 사실을 적발하고도 세종의 명으로 처벌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굶어죽는 백성을 보며 세종이 떠올린 아이디어는? - 1
조선 왕조의 산림정책은 송정(松政)이라고 칭할 만큼 소나무를 우선시했다. 소나무는 당시 중국에 사대하던 양반들이 충절과 의리의 표상으로 삼을 만큼 신성시하던 수종이었기 때문에, 소나무를 훼손하는 행위는 처벌받았다. 물론 진짜 본질적 이유는 이런 형이상학적인 게 아니라 소나무가 군비 증강과 안보의 핵심이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변형이 적은 특성을 가진 소나무가 일본의 침략을 막을 군함 건조 재료에 최적이었으므로 조정이 소나무 보존에 진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어찌 됐든 이렇게 중요한 소나무를 '천한 백성'이 식용으로 훼손했는데도 세종은 왜 이를 묵인했을까?
고즈넉이엔티 출판사가 펴낸 소설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는 이 대목을 화두로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다. 작가 천영미는 세종실록에 나온 이 한 줄의 문장에 살을 붙여 1천300매에 달하는 장편을 완성했다고 한다.
소설은 등이 굽은 척추 장애인인 주인공 허은수가 세종의 정원을 돌보는 정원사가 돼 세종의 지시로 백성들이 초근목피에서 벗어날 대업을 추진한다는 이야기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굽은 소나무, 즉 못 생기고 변형된 소나무를 육성해 기근 해결에 나선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어릴 적부터 '꼽추'라고 놀림당했고 어렵게 관직을 받았으나 다른 대신들의 멸시와 모함으로 정원사로 좌천된 허은수가 굽은 소나무를 길러 대의를 이룬다는 이야기는 상징적이기도 하다.
'굽었다'는 공통점을 지닌 천대 받고 소외된 존재들이 오히려 끈끈한 생명력으로 타인과 공동체에 도움을 주는 이상을 실현한다는 문학적 주제 의식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천영미는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과 고등학교 강단에 서다가 현재는 호주에서 인문학 강사로 활동하며 외국인에게 우리 역사와 문화를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