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팀장/상임변호사, 서울특별시 장애인인권센터)
어느 날 센터에 한 지체장애인으로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중증장애인이었지만 평소 바둑, 장기 실력이 뛰어난 분이었다. 이에 평소 실력을 발휘하고자 한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장기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전국 아마추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는 주관 방송국 홈페이지 문구를 보고 아무런 의심 없이 대회에 출전한 당사자는 실력대로 예선경기를 통해 16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16강 이후부터는 본선경기인데, 문제는 본선경기의 경우 주관 방송사 스튜디오에서 진행, TV를 통해 방송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사자는 예선을 통과했음에도 본선에 진출할 수 없었다. 당사자는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에 팔과 손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예선단계 까지는 휠체어에 장기판을 올려놓고 경기를 진행했었지만, 본선에서는 “그렇게 경기를 하면 카메라가 장기판을 찍을 때 앵글이 별로다, (옆 사람이 장기를 옮기는 것을 도와주는 것은) 경기에 참가한 장애인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어서 불가하다”라는 식의 방송사의 설명을 듣고 본선 경기에 임할 수 없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센터는 이 장애인 차별 사건이 왜 발생하였고, 앞으로 어떻게 해결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대회 측에 법률 의견서를 송부하기로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문화·예술활동에 있어 장애인에 대한 여러 유형의 차별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장애인에 대하여 형식상으로는 제한·배제·분리·거부 등에 의하여 불리하게 대하지 아니하지만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를 고려하지 아니하는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를 금지하고 있다(동법 제4조 제1항 제2호, 제24조 제1항 및 제2항, 동법 시행령 제15조).
상식적으로 장기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은 장기 경기에 대한 규칙을 숙지하고 장기말을 움직여서 상대방과 경기를 치를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참가자의 신체상태가 방송 앵글에 적합한지는 대회참가의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송 대회측에서는 당사자에게 자신들의 원활한 방송제작을 위하여 정당한 사유 없이 ‘고정 설치된 장기판의 장기말을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장애를 고려하지 않는 기준을 적용하여 장애인을 대회에서 배제시키는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었다.
이 사안의 당사자가 장애로 인하여 스스로 장기말을 옮길 수 없는 등의 사정이 있다면, 대국 보조인(동법 시행령 제15조 제2항 제2호)을 두어 그 보조인으로 하여금 말을 대신 움직이게 하는 방법으로 방송을 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장애인인 당사자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비장애인만이 할 수 있는 경기진행 방법을 강요하고, 대회참가자의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아니하는 기준을 적용하여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대국에서 패배하거나 기권하지 않는 이상 경기에서 탈락하는 다른 사유는 있을 수 없음에도, ‘방송 앵글의 편의성’이라는 이유로 민원인을 탈락시킨 행위는 장애를 이유로 한 부당한 제한이나 거부로 볼 수 있다고도 보였다.
센터는 이러한 내용을 지적하고 향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돌아온 답변의 내용을 보고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대회 측은 “⓵ 대회를 주관/주최한 곳과 대회를 실시한 곳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고작 한 역할을 맡은 곳에서 이 사안의 책임을 지는 것이 어렵고, ⓶ 당시에 장애인에게 경기 진행이 어려운 점을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정중히 설명하였고 장애인도 그런 점을 현장에서 다 수긍했었는데 지금와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를 모르겠고, ⓷ 보조인이 돕는 다는 것은 장기경기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훼손하는 것이고 두뇌스포츠인 장기의 엄격한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기에 불가능했었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보내온 것이다.
장애인 차별사건이 발생하여 문제를 제기하면 ⓵과 같이 타 주체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경우를 참 많이 보게 된다. 가령, 축구경기를 보러 간 장애인이 장애인 차별행위를 이유로 입장이 거부된 것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면 경기장은 경기주최측에게, 경기주최측은 자신들 소속협회에, 소속협회는 당일 현장 통제 용역업체 등에게 마이크를 넘기면서 결국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식이다.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상 각 차별금지행위의 수범자의 범위가 법해석상 명확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현장에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장애인 차별행위자들은 ⓶와 같이 장애인 당사자가 (차별상황을) 수긍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모르쇠 수법을 쓰기도 한다. 심지어 상호 차별에 대하여 ‘합의를 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 차별행위는 악의적일 경우 형사처벌까지 받는 범죄행위이다. 따라서 합의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님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연한 것이다. 더욱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제4조 제3항에서 ‘㉮ 금지된 차별행위를 하지 않음에 있어서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 등이 있는 경우 또는 ㉯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에만 차별로 보지 않는 정당한 사유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사안에서 당사자가 장기대회 본선에 참가할 수 없었다는 것의 정당성을 설명해 줄 사유는 없었다.
대회 측에서 ⓷ 대국보조인이 경기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하여는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조인이 보조행위의 상식적 수준을 넘어서서 옆에서 훈수라도 둘 까 걱정이 되었다는 취지인지, 오히려 보조인이 상대방을 이기기 위하여 보조행위를 하면서 일부러 불리한 위치에 말을 놓는 방식으로 경기의 공정성을 해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는 취지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벌써 7년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고 알아보면 감행하지 않게 될 장애인 차별행위가 아직도 개인의 무지를 가장한 ‘합리화’를 통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법은 상식의 교집합을 모은 최소한이다. 설사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는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그 내용은 더더욱 모른다는 변명을 한다해도, 대부분의 위법한 장애인 차별행위는 적당한 ‘합리화’로 덮어질만큼 불법의 양이 적다고 할 수 없다.
이 사안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양 당사자간의 합의서를 받아 조사중해결로 처리하면서 차별행위의 시정을 요하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장애인 차별사건이 악의적이지 않은 가해자의 ‘합리화’에서 시작되는 것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이와 유사한 모든 사례에 대하여 소송을 할 실익이 크지 않다면, 이러한 장애인 차별사건의 기민한 현장 대처를 위한 장애인 권리옹호 기구의 역할이 더욱 긴요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