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애인 관련 글을 보다가 ‘장애를 극복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이란 문구를 보았다. 장애를 ‘극복하고, 이겨내고’ 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여러 대중매체뿐만 아니라 책에서도 장애인을 장애를 ‘극복한’ 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장애인의 장애 극복담은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다. ‘장애를 넘어’, ‘장애를 극복해’라는 표현은 사용이 많이 되고 있다.
장애인이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에 대해서는 영웅시 되어 ‘장애를 극복한 ○○○’이란 제목으로 여러 언론과 매체를 통해 보도되어 왔다. 장애인인 경우에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인 의사나 변호사 등이 직업을 가지게 되면 대중매체에서는 무슨 나라를 구한 사람과 같은 영웅으로 그려지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처럼 여긴다.
실제로 장애인이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직업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비장애인도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에는 어렵다. 그렇지만 비장애인이 의사나 변호사가 될지라도 영웅으로는 보지 않으며, 대단한 위인처럼 말하지 않는다.
장애인의 성공담은 비장애인의 비교 대상이 되며, 이러한 비교는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수준이 낮은 존재임을 내포하고 있다. ‘장애인도 하는 것을 너는 왜 못하냐’는 비교 대상으로 여기며,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하급의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그 사람이 성공한 것을 평가해야 한다. 성공한 여성에게는 여자인 것을 극복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여성인 것을 극복하고 성공하였다는 문장은 들어보지 못했다.
또한 장애는 개인이 극복할 대상이 아니다. 장애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특성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남성과 여성이 있듯이, 나라에서 분류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있는 것이다. 장애인으로 규정하는 범주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은 비만을, 스웨덴은 외국 이민자를 장애의 영역에 포함한다.
장애를 극복할 대상은 사회이다. 극복이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뜻은 악조건이나 고생 따위를 이겨 냄과 적을 이기어 굴복시킴이라는 것이다.
장애의 책임을 장애인 개인에게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되며, 장애인 될 수밖에 없는 사회의 책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장애인을 개인 스스로 이겨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구조나 체계를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장애인 개인은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에 대해 능숙해져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 주의할 표현
정상인, 일반인 → 비장애인
장애우, 장애자 → 장애인
장애를 앓고 있는, 몸이 아픈 → 장애가 있는
-컬럼리스트 김소리-